삼성전자 무선사업부 퇴사 후기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삼성전자.
글로벌 기업이지만.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서 사기업,대기업 하면 가장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며, 연일 다양한 언론의 주목을 다각도로 받는 기업. 명절에 가족 친지들을 만나면, 어르신들은 항상 요즘 삼성 어떠냐, 라고 물으셨었다. 내가 어떤지보다는.
무선사업부.
사람들 일상에 제일 가까운 핸드폰을 만들기도 하고, 내가 다니던 동안은 성과급 이야기에 무선 이야기가 늘 빠지지 않았다. 많은 사업부들이 있지만, 적어도 내가 입사 할때는 많은 개발직군은 무선이 최우선 지망이었다. 사내 댓상에서 조차, 삼성에는 전자와 후자가 있고, 전자에는 무선만 있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무선이 아닐때 들었었다. 그땐. 부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는데.
네임밸류
주위에선 잘다니는 회사를 왜 나오려고 하냐고. 그 안이 전쟁이라면 바깥은 지옥이라고. 이런 말들을 해줬었다. 누구나 아는 회사를 다니면 편하다. 아무도 뭐하는 곳이냐고 묻지않는다.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부모님도, 아들 어디 취직했어? 라고 물어오는 질문들에 대답이 편하셨을테다. 모르는 사람에게 소개할때도 편하다.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그랬다. 이런점이 편했고,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이미지에 적어도 밥벌이는 하겠구나 하는 이미지였으리라. 하는 생각이 든다.
인지도
언론의 기사 제목 뽑는 능력 덕분에, 바깥의 사람들은 삼성 직원이 엄청난 연봉을 받는줄 안다. 그러나 안에서는 어떻게 하면 돈을 더벌까, 더 모을까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집을 사지 못해 전세를얻고, 회사 앞 수많은 오피스텔에서 다니는 사원들중 본인 소유인 사람은 얼마나 되려나. 임직원중에 부자들은, 이미 부자였거나, 재테크 수완이 뛰어나 다른 방식으로 축적을 잘 했기 때문이지, 연봉이 어마해서 모든 임직원이 돈이 많은건 아닌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의 걱정도 이해는 된다. 나와도 힘든데, 그냥 거기서 참고 버티지.
살아남기
면접을 보러 디지털시티에 처음 갔을때. 회사의 규모를 보고 깜작 놀랐었다. SSAT 를 보는 사람은 훨씬더 많았지만,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직원도 정말 많았다. 아침에 출근셔틀을 타고 디지털시티에 내리면, 수많은 수도권에서 온 셔틀버스가 줄지어 있고 엄청난 사람들이 내린다. 퇴근하고 퇴근버스를 타러 가보면. 왠만한 작은 도시의 터미널보다 더 큰 승차장인것 같다.
그중에서 내가 살아남을수 있었을까. 회사가 대단한거고, 그 회사의 오너일가가 대단한건데. 그리고 별을 단다고하는, 임원이 대단한거지. 그런데 신입사원 시절엔 다들 그런지 모르겠지만. 뭔지모를 자부심에 들떠서 다녔던 시절이 있다. 내 위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미래를 위해 뭔가를 준비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내내 그저 그런 고과만 받았다. 계속다녔다면 언제까지 버틸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디지털 시티에서 일하는 직원이 2만명이면, 1년에 최소 1000명은 하위고과를 받는 셈이다. 아마 더 다녔더라도 몇년 못다녔을것 같기도 하고.
업무환경
주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인터넷에 가끔 보이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환경에서 일을 했던것 같다. 타부서와의 마찰을 제외하면. 적어도 내가 일했던 부서에서 사람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내가 동료들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존재였을것같다. 함께 일한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마지막 면담에서도 그렇게 말씀드렸었다. 많은 기회를 주셨는데 잡지 못해서 아쉽고 후회된다고.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다. 더 적극적으로 했다면 더 다양한 기회들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업무강도
업무 강도는 매달, 매주 달랐다. 칼퇴를 하는 날도 많았고, 늦게 가는 날도 많았다. 나오기전, 내가 몇시간을 근무했는지 계산을 해볼걸 그랬다. 12시간을 하는 날도있었고. 4시간만 하고 나온 날도 있었다. 들어오기 전엔, 정말 야근 힘들다고 그렇게 들었는데. 막상 와서는, 우려보다 합리적이었다. 말도 안되는 지시도 적어도 부서 내에선 없었고. 회사 차원에선... 음. 어디나 완벽한 회사는 없으니까.
복지
하루 3끼를 모두 주는게 정말 큰 복지인것 같다. 출퇴근 통근버스와. 임직원몰 혜택. 자율 출근제에서 자율 출퇴근제로. 그리고 재택근무까지. 이런 시도들은, 회사의 규모와 제조업 기반 대기업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시도 되어왔고, 정착까지도 되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자율 출퇴근제를 100% 사용했다. 일찍 나온 날도 정말 많았고. 점심 먹기전에 출근한 날도 많았다. 10시 전에 출근하면 오늘 어디가냐고 주위에서 물어봤을 정도. 그리고 기타로.. 수영장 헬스장도 잘되어 있고, 축구장 풋살장 암벽등반에, 야구 배팅머신까지. 왠만하면 무료인 사내 병원에 약국까지. 휴가도 내가 쓰고싶은 날짜들에 맞춰 썼고, 야근 하고 특근하면 정해진 수당을 제때 받았으니. 역시 대기업이라고 해야하나.
개발자로서의 커리어
들어오기 전 들었던 가장 많은 말이, 대기업 가면 외주 맏기고, 관리만 하기 때문에 개발자로서 성장하기 힘들다는 말이었다. SI 기업을 가지 않는 이상 개발을 할 기회가 없을것이라고 했다. 워낙 큰 회사라, 모든 개발직군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개발자로서 좋은 환경에 있었다. 왠만한 회사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트래픽을 경험하기도 했고, Facebook AI 연구소장님이 와서 강연을 한다거나, 나도 해외 출장 기회도 있었고, 계속 개발을 했다. 획을 그을만한 그럴듯한 무언가를 보이진 못했지만, 있는동안 재미있게 일했다. 재밌다고 생각하고 하면, 하다보니 재미있었다.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내 부족으로 더뎠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을 정도.
연봉
취준생일때도 가장 많이 궁금했고, 취업을 하고나서도 주위에서 가장 궁금해 하던것이다. 결국 통장에 얼마 찍히냐.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평균 연봉과, 원천징수와, 통장에 찍히는 급여 사이엔 매우 큰 괴리가 있다. 그리고 취준생 시절 이른바 삼전 무선 이라는 네단어를 만든게 성과급 때문인데. 이 성과급이란게 회사측에서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갑자기 내년에 0% 여도 아무런 항의를 할수 없다. 그럼 잘 받다가 연봉이 갑자기 확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매년 위기라고 하는 식상한 말을 듣지만, 성과급은 결국 회사가 정해주는 거기 때문에 연말만 되면 소문에 민감하고, 사업부 사이에 민감하고, 마음을 조리게 된다. 연봉만 놓고 봤을때는, 성과급을 빼면 솔직히 평범한 회사다.
진리
디지털시티에만 약 2만? 3만여명이 근무한다고 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극단적인 예를 들면 너무 극과 극이 된다. 어떤 사람은 몇년동안, 야근 한번 주말출근 한번 없이, 칼퇴에, 개발 업무도 안하고 성과급 최대치로 꼬박 받아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매일 야근, 잦은 주말출근에 힘든 개발업무를 하면서도 가장 낮은 성과급을 받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너무나 큰 회사이고, 회사 안에도 또다른 회사나 마찬가지라서 문화가 다르다고 들었고, 팀장이 그룹장이 누군지에 따라 분위기도 다르기 때문에 연봉이 어떤지, 야근이 잦은지, 개발은 뭘 하는지. 언어는 뭘 쓰고, DB 는 뭘 쓰는지. 취준생인 시절 이게 제일 궁금했는데, 사실 아무도 대답을 해줄수가 없는 질문이었다는걸 이제야 안다. 사바사. 케바케. 이 넓은 회사에서 그걸 알고 대답해줄 수있는 사람은 없으며. 와서 일하고 겪어보기 전까진 아무도 알수가 없는 것이었다.
퇴사의 이유
퇴사자들은 제각각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게 가장 큰 퇴사의 이유는 해외였다. 해외에 처음 가본 이후, 오래 살아보고싶다고 생각했다. 해외에 오래 살수 있는 명분은 대학원이나 취업 둘 중 하나였는데, 대학원은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 후, 해외 학위가 없으면 취업은 불가능한줄로만 알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가, 기회가 아예 없지만은 않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퇴사에 대한 생각이 선명해졌던것 같다.
새로운 시작
입사할때도, 여기서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입사하진 않았었다. 언젠가 지만 막연히 이직하거나 해외 대학원을 다시 노려봐야지 라고 생각하고 입사했으니까. 사실 삼성이 최우선순위는 아니었다. 고학번 선배들의 농담에 의하면, 예전엔 과사무실에 대기업 입사지원서가 쌓여있었고, 그중에 그냥 지원하면 붙는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 어려운 시기겠지만, 내가 취준생인 시절에도 쉽진 않았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내 목표는 더 작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거였다. 금융권 IT 가 왠지 모르게 끌렸었다. 그중에도 난이도가 제일 높다는 금융권 공기업이 목표였다. 그런데 A매치 데이 아침에 늦잠을 잔 덕분에 시도해볼 기회를 날려버렸다.
그래도 신입사원으로 삼성에서 일했던 걸 후회하진 않는다. 그곳에서 6년 반의 시간도 아깝지 않다. 다시 취준생 시절로 돌아가, 금융권 IT 기업과 삼성을 둘다 합격시켜준다면, 그래서 선택을 다시 한다면, 그래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퇴사 면담을 미루고 미뤄서 퇴사를 방해한다는데. 나는 아무도 붙잡지않은걸 보면. 더 빨리 나왔어야했나 싶은생각도 든다. 이미 타이밍 늦은건가- 그래도 이미 나왔고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강력한 동기 부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이 결정에 후회가 없지만. 또 다른 6년이 지난 후에도 지금의 결정을 후회 하지 않는건 이제부터 내 나름이겠지. 바이바이 보안스티커.
글 잘 쓰시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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